티스토리 뷰
미루기의 역효과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경험을 합니다. 어렸을 적 놀고 싶어서 방학숙제를 미루거나, 새해를 맞이해서 거창한 목표를 세워놓고 '내일 해야지, 내일 해야지' 하면서 그 날 그 날 해야 할 일을 미루기도 합니다. 분명 그것들을 하지 않으면 당장의 몸은 편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뤄왔던 일들을 언젠가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점점 무거워집니다. 저도 청소년 시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르기 전 시험공부를 할 때도 어찌나 공부하는 게 싫었던지, 안하던 청소를 하거나 어느샌가 게임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즐거웠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 공부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해야 할 공부에 집중을 못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일을 미루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왜 기껏 미뤄놓고 마음은 불편해지는 것일까요?
자이가르닉 효과
이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하는 심리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러시아 출신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 1900-1988)이 커트 르윈(Kurt Lewin, 1980-1947)과 함께 연구해서 밝혀낸 심리 현상으로, 끝마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기억이 강하게 지속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숙제를 미뤘을 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되뇌이면서 해야 한다는 강렬한 생각으로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드라마나 소설 등의 컨텐츠에서도 흔히 사용됩니다. 인물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다음 이 시간에...'라고 하면서 가장 중요한 장면을 앞두고 끊어버리는 게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OTT서비스가 많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다음 회차를 손쉽게 볼 수 있지만 TV로만 드라마를 접하던 시절에는 제일 재밌어지는 순간에 어떻게 그리 끊어버릴 때면 다음 화가 방송될 때까지 그 드라마만 생각나곤 했습니다. 주로 그다음에 어떻게 될지 궁금증을 야기시켜서 다음 화를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방송국의 계략(?)에 넘어갔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자이가르닉 효과의 재미있는 부분은 그 다음 내용입니다. 끝마치지 않은 일은 머릿속에 강하게 기억되지만, 그 일을 마치고 나면 기억하고 있던 것들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수능을 치르기 위해 피나도록 공부하면서 머릿속에 모든 지식을 담지만 막상 수능을 다 치르고 나면 수년간 공부한 내용들이 며칠 안 가서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의식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우리는 자이가르닉 효과를 몸소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미루는 심리를 이기는 방법, 계획 세우기
해야 할 일을 미루는 동안은 다른 즐거움으로 회피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 일을 하기 싫어하는 마음과 부담감 혹은 불안감이 점점 쌓입니다. 하지만 그 일을 마치고 나면 해냈다는 성취감과 후련한 마음이 미루면서 느꼈던 잠시동안의 즐거움보다 더 크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이는 회피로 얻는 즐거움보다 끝까지 해내고 난 후의 성취의 즐거움이 더욱 가치가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시멜로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몇 분 뒤에 얻을 한 개의 마시멜로를 위해 눈앞의 마시멜로를 참는 것이 힘들 수 있겠지만, 인내한 이후에 얻게 될 마시멜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달콤할 것이고 겪었던 인내의 고통은 생각보다 빠르게 잊힐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이가르닉 효과를 활용해서 2배의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제안드리는 방법은 '계획'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어떤 일을 미루는 이유는 '왜 이 일을 지금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거나,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계획을 세우면 마지막에 얻게 되는 성취, 즉 기대할 수 있는 결과와 목표를 명확하게 알 수 있고 세세하게 세운 계획은 그때 그때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니 살짝 미루더라도 자이가르닉 효과에 의한 미룬 일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1% 해놓고 100%를 바라보며 일을 미루면 99%의 격차에 대한 자이가르닉 효과는 더욱 일을 해내기 어렵게 만들 수 있지만, 같은 1%라도 다음 해야 할 일이 2%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1%의 격차에 대한 자이가르닉 효과는 99%의 격차에 대한 자이가르닉 효과보다는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조금씩 이뤄나가게 된다면 어려움을 이겨내는 경험과 성취감 모두를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조금 서툴더라도 계획을 세워보고, 계획을 수정해나가면서 원하는 목표를 이뤄나감으로써 자이가르닉 효과를 활용해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철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한이 만물의 근원이다, 아낙시만드로스 (0) | 2023.03.21 |
---|---|
나는 수학만 하지 않았다, 피타고라스 (0) | 2023.03.20 |
질문의 힘을 알다, 소크라테스 (1) | 2023.03.19 |
서양의 무소유 철학자, 디오게네스 (0) | 2023.03.19 |
중용을 추구하다, 아리스토텔레스 (0) | 2023.03.18 |
- Total
- Today
- Yesterday
- 중용
- 실천
- 그리스
- 철학
- 원재료명
- 리얼클래스
- 영양정보
- 철학자
- 영양
- 가능성
- 리얼 클래스
- 영어공부
- 발전
- 현상학
- 부작용
- 소크라테스
- 데모크리토스
- 심리학
- 원재료
- 트랜스지방
- 가치
- 노력
- 스토아학파
- 플라톤
- 건강
- 공부
- 지방
- 언어
- CNN
- 타일러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